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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와 까마귀밥 이야기

by 하늘신부 2024.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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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와 까마귀밥

 

<왕상17:1-7>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본문에 대한 풀이

종교가 부패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때마다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주신다. 엘리야가 활동하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2900년 전 아합 왕이 북이스라엘을 다스리며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탄압하던 시대였다. 당시 아합 왕은 점술적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는 자기 옆에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 400인을 두고서 음란하게 우상을 섬기고 있었다.

이 때 엘리야가 나타나 아합에게 수차례 경고하였지만 그 말을 듣지 않자, "내말이 아니면 수년 동안 비가 오지 아니하리라'' 는 이 한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 가뭄을 선포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항상 그 보낸자를 통해 말씀하셨다.

국가가 부패하든지 종교가 부패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보낸다. 정치가 부패하면 정치의 지도자가 나타나고, 종교가 부패하면 종교의 지도자가 나타난다. 종교가 가장 부패됐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던 엘리야는 불 같은 성격을 지닌 영웅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만한 이적과 능력을 많이 행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가뭄을 선포하게 한 후 그릿 시냇가로 가서 머물라 하시고는 까마귀들을 명해 너를 먹이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엘리야가 아합의 종교적 탄압을 피해 거기서 숨어지내는 동안, 하나님이 명하신 까마귀가 아침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가져와서 엘리야가 그 떡과 고기를 먹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본문의 내용이다.

 

 

 

 

 

 

과연 이 본문말씀대로 까마귀들이 먹을 것을 갖다 줘서 먹고 살았을까?

 

여기서 보면 까마귀들이 먹을 것을 갖다줘서 먹고 살았다고 하는데 과연 그랬을까? 부흥강사들이 특히 이 설교를 잘한다. 

하나님의 위대한 이적과 기적이라고 하면서.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보는가. 정말 하나님이 까마귀를 시켜 엘리야를 먹여 살리게 한 것일까? 그야말로 말 그대로의 단순한 이적과 기적이었을까? 앞 강의를 이해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하나 따져보자.

 

먼저 까마귀에 대해 알아보겠다. 까마귀는 대개 죽음이나 불길함을 상징한다. 왜 하필 하나님은 그 많고 많은 새들 중에 까마귀를 시켜서 먹을 것을 나르게 하셨을까? 

 

 

 

 

 

결론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기서 말하는 까마귀는 어디까지나 비유였다. 하나님께서 미신을 섬기는 자들을 까마귀로 비유해 말씀하신 것이다. 그 당시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던 자들이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까마귀들이었던 것이다. 미신을 섬기는 자들에겐 특히 떡과 고기가 빠지지 않는다. 아무리 가난해도 그들이 제사지낼 땐 떡과 고기를 빠트리지 않는다.

게다가 그 때는 가뭄이 극심할 때였으니 비가 오게 해달라며 그 정성이 더 심했을 것이다. 

바알 신은 남성신으로 도시인들이 신당을 차려놓고 섬겼던 신이고, 아세라 신은 여성신으로 신당은 없이 오래된 나무나 커다란 바위에 제물을 올려놓고 섬겼는데, 거기서 그들은 그렇게 떡과 고기를 올려놓고 절하며 제사지냈던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쪼개어 설명하자면, 우상들을 섬기는 자들은 인 까마귀들이고,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게 섬김을 받던 귀신들은 영 까마귀라 할 수 있다. 인 까마귀들은 자기들이 제사지낸 것을 절대 안 가지고 간다. 그대로 두고 간다. 이것들은 진짜 까마귀들이나 먹고 살지 사람들은 부정탄다고 안 먹는다. 그러니까 엘리야가 먹었던 것은 진짜 까마귀들이나 먹던 까마귀 밥으로 남몰래 숨어서 먹을 수 밖에 없었던 고생의 떡과 눈물의 고기였던 것이다.

본문에 나온 까마귀는 결국 세 종류이다. 실제 조류 까마귀와 하나님을 섬기지않고 우상을 섬기던 인 까마귀, 이렇게 세 종류의 까마귀가 있었다. 하나하나 다 따져보아도 하나님께서 왜 까마귀라고 표현했는지 이제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 보시기에는 죽은 자들이다. 그래서 죽음을 상징하는 까마귀에 비유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이적과 기적을 일으켜 까마귀에게 음식을 나르게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적과 기적을 일으켜 까마귀에게 음식을 나르게 한 것이 아니다.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비유적 표현이었을뿐이다. 이와 같이 이적과 기적같이 보이는 사건들도 제대로 깨닫고 보면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가능한 일들인 것이다. 이적과 기적도 다 법칙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법칙을 벗어난 이적과 기적은 없다.

 

 

 

 

 

 

기독교복음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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